서울둘레길 종주

17.01.08(일)가족산행.서울둘레길 5구간 (사당역 - 석수역 구간 )산행

lsm37 산행인 2017. 1. 12. 17:35

누구와 : 가족산행 으로 아내 와 광희 셋이서 .

산행지 : 서울둘레길 5구간(사당역 - 석수역 구간)산행 .

산행코스 : 사당동 - 석수동 구간 .

산행거리 : gps 거리 13.9 km . 서울둘레길에 표시된 거리는 12.7 km . 2분의1은 6.35 km . 오늘 5구간 산행거리는 6.35 km 이다 .

구간거리 : 사당역 - 낙성대 = 3.89 km .  낙성대 - 서울대정문 = 1.91 km .  서울대정문 - 호압사 = 3.4 km  . 호압사 - 석수역 = 3.5 km  = 계 12.7 km .

산행시간 : 07.08분23" - 12.43분20 " = 5.35분(기타시간 1.07분 포함)

날   시 : 구름약간 . 0 - 7도 . 바람없음 . 산행하기 좋은날시 .

기   타 : 디카번호 1613 - 1710 = 98장중 70장으로 구성 .


사당역 4 번출구에서 산행 시작합니다 . 


5구간 관악산코스 1 스템프 아내 인증 .


나도 인증 .


관악산 관음사 일주문 .


무속신앙(무당골) .

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은 우주의 만물과 그 운행엔 각각 그 존재와 질서에 상응하는 기운이있어 그 기운과 질서를 따라 성심껐 섬기면 소원을 성취한다는 ,

자연적 신관과 나름대로의 신앙체계를 갖춘 한국의 민간신앙이다 . 

신앙의 대상이 우주의 성질은 물론 천지간의 자연신과 인신 유형 신  무형 신 등으로 무한하게 분포되어 있는것이 특징이다 

하늘의 해와 달 , 별자리 , 땅위의 산과 들  , 바다와 계곡 , 동네 우물 , 바위와 고목 , 집의 대들보와 부뚜막 , 심지어 뒤간과 굴뚝까지도 , 

그 자체로 혹은 그곳에 상주하는 신격이 있는 것으로 상정하고 , 위하고 조심함은 물론 영웅신 , 성인신 , 조상신 , 길거리의 주인없는 귀신까지도 

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무주만물을 신으로 모시는 형태이다 . 

오랫동안 그 믿음의 흔적들이 머무는 곳 정숙한 마음으로 지나며 본다 .


현위치 5 - 16 지점 . 연주대 갈림 .     (서울둘레길 낙성대 1.32 km )     (관음사 1.28 km)     


가족들이다 . 날씨가 더워 외투를 벗었다 .


낙성대 .

낙성대는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장군이 태어난 장소이다 . 

장군이 태어날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. 


안국문 .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. 


공원내에 조성된 장군의 청동기마상 . 


강감찬 장군의 기마상을 배경으로 인증사진 .


나도 인증을 한다 .


사당을 배경으로도 인증을 한다 . 


나도 빠질수 없다 . 


현위치 5 - 21 지점 . 낙성대공원 .     (서울대 1.72 km )     (관음사 2.8 km )


서울대 정문 . 아내의 인증 사진 .


나도 인증을 한다 .


관악산 관리소 입구 . 스템프 인증 .


나도 인증 .


현위치 5 - 30 지점 .     (서울둘레길 0.23 km )     (삼성산 성지 2.72 km ) 


오래된 약수터 쉼터에서 , 아침식사 준비 한다 . 아내는 잠시 쉴시간이면 몸풀기 운동을 한다 . 70대 몸은 나보다 유연하다 .


폐쇄된 약수터 쉼터 . 아침 식사한 장소 .


서울둘레길은 산행과는 다르게 완만한 숲길로 조성되여있다 . 물론 일부 산행로도 있다 . 


솟대를 많이 만들어놓은 지점 을 지난다 . 

솟대의 유래를 살펴보면 옛날에 마을을 지켜달라는 뜻에서 꼭대기에 나무로만든 새를 달아 마을어귀에 세우던 장대를 말 합니다 . 

솟대의 모양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, 일반적인 것은 긴 장대 꼭대기에 세갈래로 된 나뭇가지 위에 세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올려놓은 형태입니다 . 

솟대는 세우는 목적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, 가정에서 경축할때나 , 마을입구 , 경계 , 성역에 세워 수호신 역활을 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. 


이곳 솟대들은 지난 2011년 7월에발생한 집중호우로 쓰러진 나무들을 활용하여 둘레길을 이용하는 분들의 건겅과 안녕을 기원하기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. 


관악산 도란 도란 걷는길 .

관악산 관문 - 호암사까지 총 3.5 km구간으로 , 숲길을 따라 무당골의 토속신앙터 , 서울대와 관악산 조망 , 낙성대 공원 , 전통사찰과 , 천주교 삼성산 성지 ,

울창한 숲길을 지나며 메타세콰이아 나무와 더러는 주목도 보며 , 우리 가족은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 갑니다 . 


잘 조성된 조림지 쉼터에서 잠시 쉬며 , 간식도 먹고 도란 도란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. 서울둘레길이 주는 축복입니다 . 


서울 둘레길을 함께걸으며 건강과 화목한 모습을 바라봅니다 . 


덤으로 서울둘레길 인증 도 합니다 . 


아내의 모습도 사랑스럽습니다 . 


삼성산 천주교 성지 . 

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,

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리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와 (좌) ,  성 베드로 모방나 신부 (중앙) , 성 야고보 사스탕 경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(우) 성지 표지석 .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님들의 피로서 증거한 복음과 함께  님들의 자취도 이 땅에 영원 하오리 

 

이들은 1836년 이래 조선에 입국하여 ,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 복음전파에 힘 썼습니다 . 

아울러 모방나 신부는 당시 소년이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, 최양업 토마 , 최방제 프란치스코 등을 선발하여 ,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 ,

최초의 조선인 신부를 양성 함으로써 조선 천주교회에 큰 업적을 세웠습니다 . 또한 성 야고보 사스탕 경 신부는 자원해서 조선 포교활동을 하였습니다 . 




세분의 성인을 모신 성지 .

(좌) 성 베드로 모방나 신부(한국명 나백다록)1803.9.20 - 1839.9.21 (당시 35세)

       (중앙) 성 리우렌시오 앵베르 범 주교 (한국명 범세형) 1797.4.15 - 1839.9.21 (당시 43세)

(우) 성야고보 사스탕 경 신부 (한국명 청아각백) 1803.10.7 - 1839.9.21 (당시 35세)


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세 성직자는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위해 스스로 관가에 나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새남터에서 군무효수 형 으로

1839.9.21일에 사형을 당 하였습니다 . 


이들의 유해는 20 여일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후에 교우들이 노고산(지금의 서강대 뒷산)에 안장되었고 , 

1843년에 박 바오로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안장되였습니다 . 

그로부터 58년후인 1901년 박 바오로 아들 박순집 베드로의 고증으로 , 조선 제8대 교구장  위델 주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 성직자의 유해가 발굴되어 , 

용산 예수성심 신학교를 거쳐 같은해 다시 명동성당 지하묘지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.

 

세 성직자는 1925년7월25일 시복 되었으며 , 1970년 봄 오기선 신부에 의해 그 동안 아무런 표시도 없이 방치되여 오던 삼성산이 세 성직자의 매장지였던 

곳으로 확인됨에 따라  같은해 5월12일 김수환 추기경과 노기남 대주교및 박순집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석을 세우고 축성식을 가지면서 삼성산 

안장터는 성지로서의 최소한의 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. 

이후 관할 본당인 삼성산 성당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, 세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월례미사는 이들의 순교일인 21일 주일미사는 부활 제 2주일부터 연중 

제 34주일까지 봉안되고 있씁니다 .  



삼성산 성지는 삼성산 성당 교인들이 나무 한 그루 , 꽃 한송이를 직접 심으며 조성 하였습니다 . 


성지를 지나서 , 호압사로 올라가는 갈림길 . 


호압사 포대화상 . 

포대화상은 체구가크고 배가 볼록하며 얼굴에 환한웃음을 띠고 , 항상 서민들과 함께 하시며 특히 어린이 들과 병약한 분들에게 복과 덕을 베프시는 스님 .

배꼽에 500원 동전이 들어가 있다 . 


호압사 .


호압사 건립유래 .

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인 호압사 창건과 관련하여 ,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. 

태조는 왕사인 무학대사(1327 - 1405)의 조언으로 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 태조의 꿈속에서 ,

반은 호랑이이고 반의 모양은 알수없는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을 품으며 건물을 드리받으려고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화살을 쏘아댔지만 ,

괴물은  아랑곳 하지 않고 여러차례 짓던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. 

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때 어디선가 " 한양은 비할떼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 " 라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노인이 있어 무슨묘안이 

있느냐고 물었다 . 가만히 가리키는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호랑이 머리를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었다 . 

꿈에서 깬 태조는 무학대사를 불러 말을 전하였고 , 무학대사는 호랑이 기세를 누르기위해 호암산에 호압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. 


호압사에는 현재 문화재 8호인 석약사불 좌상이 모셔져 있고 도량내에 있는 500년 수령을 지닌 두 그루의 보호수는 호압사의 역사를 입증하는 자료이며 

백년의 세월을 품고있는 전통 사찰이다 . 두 나무의 몸통이 범상치 않다 . 



경내 9층 석탑 .


범종루 . 운판 , 목어 , 대북 , 범종 두루 갖추었다 . 보통은 각이라 하는데 루 라고 했다 . 


약사전 .


9층 석탑 .


동자불 같다 . 처음보는 불상이다 . 


서울 둘레길 현위치 5 - 52 지점 .     (호압사 1.4 km )     (석수역 2.9 km )     (서울대 3.9 km )


잘 조성된 잣나무단지를 지난다 . 





약수터 돌탑 . 무속신앙의 기도처 .


시흥동 신선길로 진입한다 . 


시흥동 신성길 .

시흥동 지역의 토템신앙으로 기도를 올리는 장소가 있다 . 


신선길을 지나며 나도 신선이 된듯한 기분을 느낀다 . 신선이 따로 있나 . 우주를 주유하면 신선으로 족하다 . 


신선길에는 돌탑들이 많이 보인다 . 


우리 가족은 지나가고 , 도인 한분이 올라오신다 . 하얀수염을 휘날리며 감물든 의상을 입었다 . 요즈음의 신선타입이다 . 


바람처럼 지나치는 도인을 감히 디카에 담을수가 없었다 . 이심전심인가 아들과 아내의 발걸음이 일치 한다 . 나도 마추면 삼인 일치다 .


서울둘레길 현위치 5 - 60 지점 . 시흥계곡 갈림 .    (호압사 2.6 km )     (석수역 1.7 km )    


때죽나무 연리지 . 완벽한 연리지다 .


국태민안 기원 돌탑 . 

지금은 국가의 안위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 . 모든 국민이 다 행복하다면 국가는 튼튼한 기틀위에 서 있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. 


서울둘레길 현위치 5 - 64 지점 . 서울 시흥동 과 안양시 경계쯤으로 생각된다 . 

조금은 지친듯한 아내의 모습 화이팅을 외쳐준다 . 


터널위 지점이다 . 안양권에 들어왔다 . ?


서울둘레길 5 - 68 지점 .      (석수역 0.3 km )     (호암산 4 km )

이 지점은 많이 와본 지점이다 . 서울 강동남 16산 산행들머리 이며 날머리 이다 . 그 때는 둘레길이 아닌 호암산 능선따라 삼성산 가는길을 따라갔었다 . 

 

이곳에 관악산 구간 마즈막 스템프 인증 장소가 있다 . 힘드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부인한다 . 당연하다 . 힘든 역경은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. 


살짝 위로해 준다 . 흐뭇해 하는 아내의 얼굴이다 . 


한번으로는 부족한듯하여 꼭 안아준다 . 나에게는 우주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다 . 


나도 인증 한다 . 


석수역 육교 . 아내의 친정은 석수역 30 m 부근이 였다 . 처가집터는 석수역 주차장이 되었다 .


모자 는 모자를 썻다 . 


여보 5구간 완주를 축하합니다 . 수고 했습니다 . 다음주는 6구간 입니다 . 가족과 함께 산행도 행복했습니다 .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l  s  m  3 7   산 행 인  이 상 목   항상 감사합니다 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