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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.10.19(목)경남 합천 가야산 상왕봉 산행(해인사 탐방) .

lsm37 산행인 2017. 10. 23. 13:40

누구와 : 신마포(한백팀)회원님들과 .

산행지 :경남합천 가야산 산행 . 불랙야크 100명산 어게인 44차 인증산행(해인사 탐방) .

산행코스 : 백운리 주차장 - 백운탐방지원센타 - 만물상 - 상아덤(서장대) - 서성재 - 칠불봉 - 상왕봉 - 토신골 - 토신골탐방지원센타 - 해인사 탐방 - 

            성보박물관 - 치인리 치인주차장 .

산행거리 : gps거리 10.71 km + 클린거리 0.08 km = 계 11.78 km .

산행시간 : 10.35분43" - 15.06분32" = 5.06분32"(기타시간 46분 포함)

날   씨 : 구름많음 . 15도 . 습도 80% . 산행하기 좋은 날씨 .

기   타 : 디카번호 1575 - 1769 = 195장 + 폰사진 5장 = 계 200장중 123장으로 구성 .

          클린산행 = 대1봉 80 % 수거/ 귀경중 휴기소 처리/산행로 청결지수 보통 2급 .



통계 & 트렉 정보 .


백운리 가야산 가천분소 . 주차장 에서 출발한다 .


가야산 야생화 식물원(성주군) .

 

백운탐방지원센타 . 직원들이 나와서 안전산행을 당부하며 인사를 한다 . 그동안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타를 수없이 통과해 왔지만 이러한 환대는 처음이다 . 

깊은 인상을 받는다 . 가야산 백운탐방지원센타 직원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. 오늘은 클린산행 쓰레기 줍기도 신바람이 난다 . 

 

바로 앞에 만물탐방로 입구 . 자연으로 구성된 바위가 만물을 이루고 있다는 만물상 기대해 봅니다 .


주차장에서 약 1 km 거리(고도 차 200 m) 약 20여분 올라와 바위 전망대에서 백운리 마을를 조망한다 .


멀리 상아담이 보이고 뒤로 정상도 조망된다 .

 

현위치 가야 06 - 02 지점(900m) .     (백운탐방소 1 km )     (서성재 2 km)


앞봉 만물상 뒷봉 상아덤 .




암봉에 올라보니 옛 성터처럼 보인다 . 주변을 둘러보니 인위적인 축성의 모양도 보인다 . 


높고 큰 암봉에 올라 주변을 조망한다 .산행로에서 약간 비켜간 지점이다 .


큰 암봉위에서 만물상을 조망한다 . 


큰암봉위에서 만물상 좌측 암봉을 조망한다 .


큰암봉위에서 백운리 마을 조망 . 마을에서 거리 약 2 km/ 고도 약 150 m 올라와 헬기에서 보는듯 하다 .


현위치 가야 06 - 03 지점(990m)  만물상 .     (백운탐방지원센타 1.5 km)     (상아덤 1.3 km)   만물상은 이지점 전후에 산재해 있다 . 


만물상 위치표시점 을 지나며 주변을 조망한다 .


만물상 바위 .


만물상을 이루는  바위와 단풍의 조화도 아름답다 .




소나무를 잡고 올라가지 마세요 . 

올라가면 전망이 좋을것 같은데 이 작은 소나무를 잡고 밟아야 오를수 있다 . 구지 오르지 않아도 눈은 떠 있고 볼것은 모두 볼수있다 . 

보통은 다 못보고 지난다 . 만물상은 계속된다 . 


만물상 바위들 . 여심을 빼앗고 있다 . 


정상을 배경으로 . 정상은 구름속으로 들락날락 하며 조화를 부린다 . 그때마다 포즈를 다시 잡는다 . 그 마음은 무죄 다 . 힘든 오름을 했으니 맘껏 즐긴다 .


만물상에서  상아담을 바라본다 . 


정상은 초 단위로 변화는 모습을 연출한다 . 


이렇게 말이다 .


상아담 맨 끝 암봉이다 . 안부로 50 m 하강후 100 m이상 올라야 한다 . 20분후 상아담 암봉에 오른다 .


현위치 가야 06 - 04 (1040 m)지점 .     (서성재 1 km)     (백운동 2 km)


상아담 오르는길 . 절경을 보는데 100 m오름은 즉시 카드로 결제한다 . 저비용 고 효율이기때문이다 . 

자연의 아름다움 , 여성의 아름다움 , 인간의 향기나는 아름다움을 보면 신나고 기분이 좋와진다 . 그 고마움을 준 가치는 누구에게 보답해야 하지 .

세상엔 공짜도 많다 . 그 환희를 공짜로 맛 보려면 산에 가면된다 . 내가 산에 가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. 가야산은 아름답고 그래서 "가야 " 한다 . 



상아담 가기 전 암봉에 전망처가 있다 . 이곳이다 .


전망처에서 수시로 변하는 정상을 본다 . 구름의 조화는 계속된다 .


전망처에서 지나온 만물상도 조망한다 .


전망처를 지나며 정상을 본다 .


상아덤 오르는길 .


상아덤 가는길 거리목 .     (서성재 0.7 km)     (상아덤 0.5 km)     (백운탐방지원센타 2.3 km)


상아덤 오르는길 힘은 들어도 빼어난 경관이 보상을 해준다 .



현위치 가야 06 - 05 지점(1140) .      (서성재 0.4 km)     (상아덤 0.2 km)     (백운동 탐방지원센타 2.6 km)

상아덤은 아직도 200 m는 더 가야 한다 . 


앞에 보이는 바위가 상아덤 정상이다 .


상아 덤 . 상아는 달에 사는 미인의 이름인 "상아"와 바위를 지칭하는 덤이 합쳐진 말이다 .

상아덤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로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물상 능선과 이어져있어 , 가야산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수있는 바위덤이다 . 


상아덤에서 정상을 조망한다 . 


상아덤에서 동성봉(1227)능선을 조망한다 .


상아덤 정상부분 . 뒤로 돌아서 바위 위에 올라갈수 있다 .


상아덤 정상에서  . 바위 하나를 눞혀 놓고 온다 . 


상아덤 정상에서 상왕봉을 조망하고 출발한다 .


서성재 . 현위치 가야 06 - 06(1010 m) 지점 .     (칠불봉 1.2 km . 상왕봉 1.4 km)     (백운탐방지원센타 <만물상>3 km)


옛 가야성의 서문이 있던 곳이다 .


서성재 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, 옛 가야성의 서문이 위치해 있었던 곳에서 유래한다 . 

가야산성은 칠불봉에서 발원한 용기골 계곡을 중심으로 펼쳐져있는 상아덤 , 동성봉 능선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, 물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으며 ,

대가야의 수도인 고령과 14 km의 거리로 전쟁시 수도방어의 요충지였다 .


주변에서 잠시 쉬어서 간다 . 


정상으로 가는길 .


지나온 길을 뒤 돌아본다 .


지금부터는 암릉길이다 .


암릉을 오르며 지나온 길을 뒤 돌아본다 . 


고도를 점점 높이며 만추의 가을 을 본다 .


정상은 점점 닥아온다 .


현위치 가야 06 - 07(1346)지점 .      (서성재 0.9 km . 백운탐방지원센타 3.5 km)     (칠불봉 0.3 km . 상왕봉 0.5 km)


칠불봉 가는길 .


거대한 암봉이다 .


칠불봉 정상에서 선두 저항령 대장을 만난다 . 특 대장급이다 . 별을 달아도 되는 대장이다 . 그래서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.


칠불봉 (1433)정상에서 셀프사진 .


칠불봉 정상에서 상왕봉을 본다 .


칠불봉에서도 인증을 해 본다 .


칠불봉에서 지나온 능선길을 조망한다 .


가야산 칠불봉의 전설 .

가야산은 가야건국 설화를 간직한 해동 팔경 또는 영남의 명산으로 엣부터 정견모주 라는 산신이 머무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. 

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하에 감응되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, 

큰아들 뇌질주일 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 , 뇌질청예는 금관가야 의 시조 김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.

 

전설은 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,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김씨의 시조가 되며 , 

둘째 셋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. 

나머지 7 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한후 도 를 깨달아 생불이 되었다 하며 , 

그 밑에 칠불암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고 있다 .

  

칠불봉에서 정상을 본다 .


정상으로 가는길 .


정상으로 가는길 . 천하 절경을 볼수있는 식당에서 막걸리 잔을 나누며 하는말 ,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한다 . 오지게 경관을 볼 모양이다 .


정상갈림 .     (상왕봉 0.1 km)     (칠불봉 0.1 km)     (해인사 3.9 km)


가야산 상왕봉(1430)정상 . 우선 셀프로 인증을 한다 .


가야산 상왕봉 인증 사진 .


가야산은 가야건국 설화를 간직한 예부터 산신이 머무는 산으로 그골이 깊고 수려하여 삼재(가뭄 , 수해 , 병화)가 들지 않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.

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최치원이 저술한 "석이정이"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. 

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는 하늘의 신 이비가지 와 가야산 상아덤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. 

이후 옥동자를 낳았는데 첫재는 아버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같이 둥굴고 붉어 뇌질주일이라 이름하였다 . 

둘째는 어머니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달과같이 갸름하고 흰편으로 뇌질청예라 이름하였다 . 

이두 형제는 자라서 형 뇌질주일은 대가야 (현재고령)의 첫 임금인 이진아시왕이 되고 , 동생 뇌질청예는 금관가야 (현재 김해)의 첫 임금인 수로왕이 되었다 .

전설은 후세에 전해지며 변형이 되기도 한다 . 그래서 전설 전해지는 말이다 .

  

정상에서 중봉(동천대)를 본다 . 하산하며 만나게 된다 .


정상바위에 가야 19명소 우비정(가야산 꼭대기에 있는 우물)이 있다 . 

우물이 금우(소) 의 콧구멍 속으로 통해 있으니 / 하늘이 신령스런 물을 높은 산에 두었도다 .

혹 한번 마신다면 청량함이 가슴속을 찌르니 / 순식간에 훨 훨 바람타고 멀리 날아가리라 .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하지만 지금은 이 금우를 먹을수 없다 . 인간들의 진린과 공해로 오염되였기 때문이다 . 


정상 일대 . 함께 한 일행이 있어 정상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. 


식사 끝내고 기다리지만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. 무료한 시간  먼저 떠난다 .


정상 입구 . 원위치 .


정상을 뒤 돌아본다 . 


중봉 봉천대 .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 .

가야산 꼭대기에 신령한 곳 있으니  개울은 차갑고 초목은 무성 하도다 . 

흰 구름에다 지극히 정성을 다 하면 패연히 뇌우가 산봉우리에서 일어 나도다 .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기우제의 효험이다 .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. 상통하는 것이다 .

봉천대를 올려다 본다 . 봉천대에서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면 ,


하늘에 제를 지내는 모습의 바위가 있다 . 


바위에서 칠불봉 방향을 조망한다 .


 바위에서 하행길을 조망한다 . 하행길은 초입을 지나면 완만하다 .


다시 중봉 봉천대를 뒤에서 올려다 본다 . 


해인사로 내려가는길 .


헬기장 .


여심은 단풍에 빠진다 . 


앞서가는 일행들은 타 산악회 회원들이다 . 잡다한 인생사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.


토신골 탐방지원센타 . 직원이 없다 .


지원센타 뒤에 있다 . 칠불선원 .


칠불보궁 .


용탑선원 .

이 절은 3.1 독립운동 대표 백용성 조사(1864-1940)의 유덕과 유훈을 기리는 탑과 비를 수호 관리하기 위하여 1945년 정선선사 를 비롯한 문도들이 새운 절로 . 

현재 경남 유형문화재 제 492호 , 용성선사 승탑 및 탑비가 암자 서족에 보존되어있고 보물 제 1865호 대방광불 화엄경 주본 72를 소장하고 있다 . 

용탑선원과 해인사는 지척에 있다 . 



합천 해인사 .

법보종찰 해인사는  불보사찰 통도사 ,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사찰로 꼽는다 . 

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민족 맏음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. 

해인사는 신라시대에 화엄십찰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.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서 , 

본래 이름은 대방 장불화엄경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 진다 . 이 경전에 "해인 삼매"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, 해인사는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.  


해인삼매 는 있는 그대러의 세계를 한없이 길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, 

거친파도 즉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서 멈출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(바다)비치는(투영) 경지를 말 한다 .

이렇게 여실한 세계가 바로 부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, 우리 중생의 본래 모습이니 , 이것이 곧 해인 삼매의 가르침이다 . 


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동화엄종의 초조 의상대사(625-702)의 법손인 순응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화상이 ,

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3년 곧 서기802년10월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자금의 대적광전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하였다 . 


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장경판전 및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, 반야사 , 원경왕사비 , 000사찰 , 영산회상도 , 

청량사 석조석가여래좌상 과 삼층석탑 등 국보 보물 70여점이 있으며 광해군 내의 및 상궁 옷이 중요 민속 자료로 보관되어 있다 .

 


해인사 입구 . 세계문화유산 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 .

해인사의 창건 .

전기 한바와 같이 순응화상과 이정화상의 기도로 애장왕의 왕후가 병이 낫자 , 

그에 대한 보답으로 서기802년 신라 애장왕 3년 10월16일 신라왕실의 후원을 받아 가야산에 자리를 잡게 된다 .

신라 애장왕이 해인사를 창건할 당시 먼저 비봉산(856)밑에 봉서사(현 원당암)를 짓고 그곳에 머물면서 공사를 감독하고 정사를 함께 돌보았 다고 한다 . 

이때의 기록을 살펴보면 산너머에는 삼정승이 살던 삼정마을과 , 말을 기르던 마방동 , 극락전 동쪽에는 어수정 , 절앞에는 옥가평 등의 이름이 전하며 , 

전하는 바에 의하면 어수정은 대적광전 동편에 위치 하였다 한다 . 

   


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.

일주문은 "일심" 한마음을 뜻 한다 . 즉 일심으로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 문이다 . 



경내로 진입 . 일심으로 정진한다 .





일주문을 지나면 , 봉황문 에서 가람과 불교를 수호하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을 만난다 . 사천왕은 조각이 아닌 그림으로 조성되였다 . 계속 정진한다 .



해동원종대가람 . 해탈의 문 .

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, 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, 부처님 세계인 "불이"의 세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에 도달한다 .

"불이" 는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해탈의 경지다 .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이르는 계단 서른세개는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33 천 을 상징한다 .  



소원나무 . 수많은 소원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. 소원 성취도가 어느정도의 확율인지 알수는 없다 . 



해인범종 사물을 갓추었다 .  법종 , 어탁 , 법고 , 운판 . 범종앞에 구광루가 있다 .



어수정 ? 



임금님이 마시는 우물이다 . 창건당시 있었던 어수정은 대적광전 동편에 있었다 한다 . 



대적광전 (대웅전) 앞에 단간지주와 삼층석탑이 있다 .



대적광전 내부 삼존불 .



좌우 협시불이 같은 모습이다 .



비로전 . 법보당 .



독성각 .




대적광전 뒤에 팔만대장경 . 

팔만대장경은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에 대해 차별없이 말씀하신 법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포함 한 ,

총서 를  81,350판 에 달하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겨놓은 것으로 , 이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한역 경전중 가장 오래된 원본판이며 틀린 곳이 없다고 한다 . 

총 1,524경전 , 5천2백3십8만9천400 글자 , 6,791 책으로 되어있다 . 해인사를 "법보종찰" 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  이 대장경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. 

법보 공간은 대적광전 뒤로 가파른 계단위에 , 팔만대장경 이라는 현판을 단 문 뒤로 위치한 네 건물을 포함한다 .

 


법보전(좌) , 수다라장(우), 서 사간판전(내 위치) , 동 사간판전(앞에 작은건물) ,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있다 .

마당 좌측 긴건물이 법보공간 이며 ,우측 긴건물이 수다라장 이다 . 이 두 건물에 고려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다 . 

그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각판을 모신 동 , 서 사간판전이다 .



법보공간 . 좀전에 외국인과 함께 본 건물이며 , 뒷쪽에 법보전 /앞쪽이 수다라장 / 양쪽 작은 건물이 좌측 서 사간판전 / 우측 동 사간판전 이다 .


고려 팔만대장경판 .

고려 팔만대장경판 은 글자를 세긴 경판 편면 과 경판 양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리로 아루어져 있다 . 

마구리를 포함한 경판의 가로 길이는 약 70 cm , 세로 길이는 약 24 cm , 두께는 약 28 cm 이고 , 무게는 약 3.25 kg이다 . 

글자는 경판양면에 돋을새김(양각)되었다 . 한면의 글자를 새긴 세로줄 수는23행이며 , 행마다 새긴 걸자수는 14자 정도다 .  


내부를 들여다 본다 . 다음은 사진으로 본다 .



장경판전 (법보공간)은 대장경을 보관하는데 필요한 기본 구조만 갖추고 장식이 적어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인다 . 

그러나 장경판전은 건물이 자리잡은 위치 건물배치와 지향 , 건물구조와 창호처리 , 판가구조 경판배열 등의 측면에서 , 

통풍이 잘되고 일조량도 적당하도록 하여 , 목판을 보전하는데 최적의 조건인 항온 , 항습 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있다 . 

예컨대 판전 외벽의 앞 뒷면에는 크기가 다른 살창이 칸마다 아래 위로 나 있어서 , 건물 뒤쪽에서 내려오는 습기를 억제하고 판전으로 불어온 바람이 건물안에서 ,

골고루 퍼진다음 밖으로 나가도록 되어있다 . 대장경판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것은 이처럼 기후환경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설계되어 있기때문이다 . 

해인사에는 조선후기에 일곱차례 불이 났으나 신기하게도 장경판전에는 불길이 미치치 않았다 .

 

다시 , 법보공간 법보전과 수다라장 마당 .

해인사의 고려대장경은 석가머니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  인류 최초의 기록물이다 . 약 240 여년동안 3 차례에 걸친 고려대장경 판각은 불교를 꽃피우게 하였고 ,

인쇄문화와 기록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여 아시아 문화발전의 견인차 역활을 했다 . 이는 정신 문화사적 으로도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.

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장경판전은 1995년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, 고려대장경은 해인사의 다른 경판과 함께 2000년6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제되었다 . 

* 전에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개방이 되어 볼수 있었다 .

  

국보 제 32호 . 

반야바라밀다심경 은 팔만대장경 가운데 ,가장 짧게 260자로 서술된 1판 단권의 경판으로 , 당나라 삼장법사 현장의 한역 반야심경 또는 심경이라고도 하며 , 

반야 사상의 중심인 "공" 사상을 260자로 축약하여 서술한 경전으로 ,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의식에서 독성한다 . 

여기서 유명한 문구는 본 경전의 3행 9번째 글자부터 4행 2번째 글자인 "색즉시공  공즉시생 / 즉 현상에서는 실체가 없다 . 실체가 없으므로 현상일수 있다 .

*  

나는 해인사를 떠나며 , "색즉시공  공즉시생"을 되 뇌이며 절을 떠난다 . 시간과 세월의 중간에는 공이 있을 뿐이다 . 


도선국사와 고로쇠 나무 . 뼈에 좋은 나무 .



해인사 성보 박물관 . 전국에 성보 박물관은 몇번 보았지만 관람은 못해 보았다 . 오늘도 그냥 통과 한다 . 언제인가 날을 잡아야 한다고 하면서 시일만 보낸다 .



클린산행 . 대1봉 80% 수거 / 귀경중 휴게소 처리 / 산행로 청결지수 보통 2급 .


산행 종료 한다 . 전에 강송에서 만난분과 함께 파전에 막걸리 한잔한다 . 오늘도 신세를 진다 . 어늘 함께한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.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l  s  m  3 7   산 행 인  이 상 목  항상  감사합니다 .